● 위 치 :전남 구례군 광의면.토지면
●출사일자 : 2014년8월2일
● 날 씨 : 흐림
● 카 메 라 : 캐논 EOS-70D
● 출 사 지 : 천은사.문수사.연곡사
● 인 원 :
●출사 코스:
●출사 시간:
●이동 수단: 승용차
● 숙 박 :
● 특 징 :
천은사 소개
남방제일선찰 천은사(泉隱寺)는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번지 지리산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로 화엄사, 쌍계사와 함께 지리산 3대사찰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절은 지리산 가운데서도 특히 밝고 따뜻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지리산의 높고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맑은 물이 절 옆으로 펼쳐지고 우람한 봉우리가
가람을 포근히 둘러싸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워낙 광대한 지리산자락이라 교통이 불편하였으나 지금은 노고단에 이르는 지방도로가
절앞까지 이어져 있고 화엄사까지 직통하는 도로가 놓여 있어 어렵지 않게 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산문과 일주문을 지나 독특하고 운치 가득한 수홍문을 건너 절을 찾는 즐거움은 아주 특별합니다.
지리산의 빼어난 산수와 풍광 그리고 그 속에서 불법의 진리를 만나는 것은 더 없는 보람일 것입니다.
천은사는 신라 때 창건된 고찰이다. 신라 중기인 828년(흥덕왕3)에 인도의 덕운(德雲) 스님이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와 명산을 두루 살피던 중 지리산에 들어와 천은사를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천은사 중건 당시 지어진 극락보전 상량문에 의하면 창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당 희종 건부2년(875년)에 연기(도선국사)가 가람을 창건하였고 후에 덕운이 증수하였다.
그런데 일제시대에 간행된 구례읍지에는 이 기록에서 창건주 연기는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의 별호인데
이것을 유래로 잘못해석하여 도선국사 이후의 스님인 덕운을 창건주로 왜곡 전해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들이 도선국사가 창건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 유학시 일행선사로 부터 3천8백
비보사찰을 중건 혹은 창건토록 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신라 조정에 긴밀히 모의하여 신라 국토 곳곳에 사찰과 탑을
건립하였던 점을 생각하면 천은사도 바로 이러한 경우일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렇게 볼때 인근 화엄사의
창건연대(544년)와 비교해 볼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기 보다는 중창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창건주에 대한 기록은 밝혀진 바 없어 그 시기와 유래를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절은 더욱 번성하여 충렬왕 때(1275~1308)에는
남방제일선원(南方第一禪院)’으로 지정되었다. 그후 계속해서 많은 수도자가 진리의 광명을 터득하는
수행처로서의 역할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절의 역사 가운데 많은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고,
더욱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임진왜란등의 병화를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되는 등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 들었다.
이후 다시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1610년(광해군2)의 일이다. 당시 절의 주지 혜정선사(惠淨禪師)가
소실된 가람을 중창하고 선찰로서의 명맥을 이끌어 나갔다.
뒤이어 1679년(숙종5)에도 단유선사(袒裕禪師)가 절을 크게 중수했는데, 이로부터 절이름을 감로사에서
천은사로 바꾸었다.
1715(숙종41)에는 팔상전에 영산회상도를 조성하였고, 1749년(영조25)에는 칠성탱화를 조성하였다.
1774년(영조50) 5월에는 혜암선사(惠庵禪師)가 그 전 해에 화재로 소실되었던 전각을 중수하면서
절을 새롭게 중창하였다. 혜암선사는 수도암(修道庵)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남원부사 이경륜(李敬倫)에게
도움을 구하고 산내의 여러 사찰과 힘을 합쳐 2년간에 걸친 중창불사를 원만히 이루어냈다.
지금의 가람은 대부분 이때 이루어진 모습이니 혜암선사의 중창은 절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절 일원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천은사의 전설
절이름이 바뀐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단유선사가 절을 중수할 무렵 절의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무서움에 떨게 하였으므로 이에 한 스님이 용기를 내어 잡아 죽였으나
그 이후로는 샘에서 물이 솟지 않았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는 뜻으로 천은사라는 이름이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절 이름을 바꾸고
가람을 크게 중창은 했지만 절에는 여러차례 화재가 발생하는 등의 불상사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마을사람들은 입을 모아 절의 수기(水氣)를 지켜주던 이무기가 죽은 탓이라 하였다.
얼마 뒤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절에 들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자 이광사는 마치 물이 흘러 떨어질 듯 한 필체[水體]로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써 주면서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그대로 따랐더니 신기하게도 이후로는 화재가 일지 않았다고 한다
전남 구례 지리산 문수사(文殊寺)소개
위치 : 전남 구례군 토지면 문수리 74번지
좌청룡 우백호의 기운이 뚜렷한 구례군 지리산 문수사는 백제성왕 25년 (547년) 연기조사께서 창건하였다.
그 뒤 저자거리에서 불법을 선양한 원효대사 해동 화엄의 종조가 된 의상법사을 비롯하여
윤필 서산 소요 부유 사명대사 등 여러 고승 대덕께서 수행정진한 제일의 문수도량이다.
고승 청허당 스님의 젊은 시절 수행처이기도 했는데 이때의 한 고사가 전해져 내려온다.
불법을 깨우치기 위해 용맹정진하던 중 걸승이 찾아와 함께 수행하기를 청했다.
처음에는 식량이 모자라 거절하기도 했지만 노승의 청이 너무 간절해 같이 수행하게 되었다.
밤잠을 자지않고 수행에 전념하던 어느 날 수행하던 노승이 새벽녁에 주장자를 앞산으로 날려
황룡으로 만들더니 그 룡을 타고 안개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후 문수사는 깨달음을 얻어
성불하는 수행처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병의 난입으로 일부가 파괴된 뒤 불당을 조성하지 못한채 6.25를 맞아 전소되었고
그 후 1984년 요사채를 세우고 1988년 옛 대웅전 터에 지금의 고금당선원을 건립하고 진입도로를
완성하여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문수전 삼성각 고봉선원 방장굴 설선당 등을 건립
석축을 쌓고 3층 법당 대웅전(목탑)을 건립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문수사 반달곰 사육장
연곡사 소게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545년(신라 진평왕 6) 연기조사가 창건했으며,
신라말부터 고려초에 이르기까지 선도량(禪道場)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절의 이름은 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큰 연못에서 제비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법당을 세운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복원되었으나, 1910년 고광순이 의병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왜군과 싸우는 과정에서 다시 불타버렸다. 그뒤 곧 중건했으나 6·25전쟁 때 다시 폐사되었으며,
오랫동안 사찰 내의 분규와 불편한 교통사정으로 인해 재건되지 못하다가 1965년 대웅전만 건립했다.
1981년 정부와 신도들의 지원을 받아서 구법당을 없애고 대신 그 자리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대규모 대웅전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 뒤편에 있는 구례 연곡사 동 승탑(국보 제53호)를 비롯하여
구례 연곡사 북 승탑(국보 제54호)·구례 연곡사 소요대사탑(보물 제154호)·
구례 연곡사 동 승탑비(보물 제153호)가 남아 있고, 이 절과 좀 떨어진 곳에
구례 연곡사 3층석탑(보물 제151호)과 구례 연곡사 현각선사탑비(보물 제152호) 등이 있다.
1967년 3층석탑을 해체·수리할 때 하층기단에서 동(銅)으로 만든 불입상 1구(동국대학교 박물관)가 발견되었다
성삼제에서본 지리산 주변들..
태풍이 온다하고 지속적으로 비가 와서 텐트을 정리하여 구례의 몇군대의 사찰을 둘러보고
저녁에 하늘아래 첫동네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한잔하면서 식사도 하고 숙박까지 해결 하였다.
계곡을 몇군데을 돌아보면서 숙소을 잡으려 했으나 피서 철이라 방을 구하기는 힘들어서
지리산 에 올때마다 들리는 이동네을 찾았더니 예약손님이 못온다 하여
서울 산장에서 편하게 먹고 잘수가 있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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