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位 置 :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73
☞카 메 라 ; DSLR캐논 EOS 70D
☞산행일자 : 2015년5월25일
☞날 씨 : 맑음
☞산 악 회 ;
☞여 행 지 : (강남)수도산 봉은사(修道山 奉恩寺)
☞여행시간 :
☞산행거리 :
☞참가인원 :
☞여행코스 :
☞이동수단 ;
☞숙 박 :
봉은사 선불당은 대웅전 동쪽의 한단 아래에 위치한 대중들이 참선하는 선방(禪房)으로서, 1941년에 중건된 건물이다. 봉은사는 조선 중기 이후에 스님이 되기 위해 치러야 했던 시험인 승과(僧科)를 실시하던 곳이어서 선불당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심검당(尋劍堂)이 있던 자리에 중건된 이 선불당은 다른 절에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구조를 가진 건물로서 주목받고 있다.
봉은사는 고려시대 견성사(見性寺)라 불리었으며 그 이전 연혁은 알 수 없다. 조선 연산군 4년(1498)에 정현왕후(貞顯王后)가 성종(재위 1469∼1494)의 능인 선릉(宣陵)의 원찰로 견성사를 중창하면서 전각을 크게 조성하고 이름을 봉은사라고 고쳤다.
이 후 봉은사가 명실상부하게 조선 최대의 명찰이 된 것은 명종 6년(1551)에 선종과 교종의 승과제도(僧科制度)가 부활되면서 봉은사가 선종의 수사찰(首寺刹)로 지정되고, 허응당(虛應堂) 보우(普雨) 대사가 판사(判事)가 되어 선종의 승과를 보게 하면서부터이다. 청허 휴정(淸虛休靜) 대사와 사명 유정(四溟惟政) 대사도 이 절에서 시행하던 승과에서 대선(大選)에 합격했다고 한다. 이어 명종 17년(1562)에 보우 대사가 지금의 위치인 수도산으로 절을 옮겨 세우면서 사찰의 규모가 매우 커졌고, 아울러 한국 불교 중흥의 총본산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절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전란으로 인하여 많은 당우가 불에 타는 어려움을 겪은 후, 인조 15년(1637)에 선화(禪華) 등이 중건하였고, 순조 24년(1824)에도 경성(境星) 등이 또 한번 크게 중수하였다. 근래에 이르러 1939년 4월에 화재가 일어나 대웅전ㆍ동서승당ㆍ진여문ㆍ만세루ㆍ창고 등이 소실된 것을 다시 1941년에 중건하였다.
이 선불당 건물은 정면 8칸·측면 3칸 규모의 단층 목조기와집으로 초익공(初翼工) 양식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내부의 실제 구조는 정면 5칸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동서로 4칸, 남북으로 3칸 규모인 큰방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2칸 방이 있고 다시 그 오른쪽에 부엌과 큰방 등이 있어 결국 내부의 삼면이 빙 둘러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八作)지붕집이나 전·후·좌·우 네 곳에 작은 합각(合閣)을 형성하고 있다. 즉 일반적인 팔작지붕의 형태는 밖에서 볼 때 양 측면에 하나씩 해서 전부 두 개의 합각이 있는 것에 반해, 선불당은 앞면과 옆면에도 각각 두 개씩의 조그마한 합각을 꾸며 모두 6개의 합각이 보이는 것이다.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를 얹고 쇠서를 내어 초익공(初翼工) 양식을 이루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기단은 장대석 한벌대 기단이고, 다듬은 초석을 놓아 두리기둥을 세웠다.
지은 연대가 비록 오래되지 않았고, 내부의 천장과 뒤편이 수리되면서 조금 변형이 되었지만, 서울 시내에서 이와 같은 규모의 유례가 드문 귀중한 목조 건물이다.
(봉은사 소개)
신라시대
봉은사(奉恩寺)는 신라시대의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가 794년(원성왕 10)에 견성사(見性寺)란 이름으로 창건(創建)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연회국사는 영축산에 은거하면서 법화경을 외우며 보현행을 닦았던 신라 원성왕대의 고승이다. 또한 삼국사기 권38 <잡지(雜誌)> 제7에는 봉은사에 관한 또 다른 기록이 실려 있다. 이른바 성전사원에 해당하는 일곱 사찰 가운데 하나로 봉은사가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일곱 사찰은 사천왕사ㆍ봉선사ㆍ감은사ㆍ봉덕사ㆍ영모사ㆍ영흥사 그리고 봉은사다.
성전은 왕실에서 건립하는 사찰의 조성과 운영을 위해 설치한 일종의 관부였다. 또한 일반 행정관청과는 다른 특수 관청으로서 그 관원 조직도 일반적인 관직 이름과 다른 호칭의 관원들이 왕실 사원의 행정과 업무를 도맡고 있었다. 당시에 성전이 설치될 정도의 사찰은 신라 사회에서 대단히 큰 비중을 차지하던 곳이다. 실제 봉은사의 경우만 보더라도 신라 진지왕의 추복을 위해 건립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를 위해 이미 혜공왕대로부터 사찰 조성을 시작하여 선덕왕을 거쳐 원성왕대에 이르러 완성되었다는 점 등이 각종 자료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고려시대
우리 역사상에 등장하는 봉은사라는 이름을 가진 명찰은 세 곳이 있다. 각각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불교사적으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찰들이다. 먼저 신라 시대의 봉은사는 앞서 말했듯이 혜공왕대에 시작하여 원성왕대에 완성한 성전사원이다. 그리고 고려시대의 봉은사는 수도 개성에 위치했던 사찰로 태조 이래 역대 왕실에서 매우 중시하였던 곳이다. 이곳은 선종 계통 사찰로 유명하였고, 대대로 국사ㆍ 왕사의 책봉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선 시대의 봉은사는 바로 문정왕후의 발원과 보우대사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서울의 봉은사이다.
고려의 흔적은 사료적으로 찾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잔존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대표적 유물인 1344년(충혜왕 5)에 조성된 은입사향로에 관련한 내용은 봉은사의 고려의 숨결을 알 수 있는 자료로 남아 있다. 현재 보물 제321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향로는 최근까지 봉은사에 있다가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자료출처 : 봉은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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