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여행및산행

(진해)장복산.웅산 시루봉 종주(2)

꽃거리 2016. 4. 6. 20:19


웅산 (熊山)소개


높이 : 710m
위치 : 경남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


특징, 볼거리
시루봉은 지도에는 웅산(熊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진해 시내에서 바라보면 산 정상에 우뚝 솟은 웅암(시루바위)이 마치 시루를 얹어 놓은 것 같다 하여 시루봉으로 부르고 있다. 정상에 돌출한 기이한 시루바위는 보는 위치에 따라 마치 여인의 젖꼭지 같이 보이기도 한다.
시루봉(熊山)은 진해시, 창원시에 걸쳐있으며 북서쪽으로 장복산, 남서로는 산성산, 남으로는 천자봉과 연결된다. 시루봉은 진해의 명산으로, 신라시대부터 명산으로 이름나서 나라에서 국태민안을 비는 소사(小祀)를 지낸 산이기도 하며 조선조 까지 산신제가 올려진 곳이기도 하다.
시루봉(웅산)은 산세가 수려하다. 안민고개에서 주능선에 이르기 까지 등산로 좌우의 막힘이 없어 진해시가 한눈에 보이며, 좌로는 창원시가 보인다. 진해시와 멀리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는 초원을 걷는 듯 하는 탁 트인 시원한 조망이 일품이며 진해 시목인 상록수 편백의 군락이 볼만하다.
수목이 우거져 좌우를 볼 수 없고 앞만 보고 가는 산행보다, 마음까지 시원한 조망을 볼 수 있는 테마 산행으로 권할 만하다. 따라서 산행은 군항제가 열리는 봄에 벚꽃 산행과 진달래 산행으로 좋다. 시루봉 능선의 진달래 개화시기는 4월 5일에서 15일 사이이다


산행 길잡이


산행 깃점은 안민고개, 장복산, 자은본동, 웅동, 장안동 등 여러 기점이 있으나 창원시와 진해시의 경계인 안민고개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안민고개에서 올라야 시루봉 전체를 올려다 보며 서서히 시루봉을 향하며 전망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정자가 있는 안민고개 고갯마루에서 길게 늘어선 능선을 따라 시루봉으로 향한다. 1시간가량 오르면 커다란 전망바위에 닿는다.
이곳을 통과해 잠시 가면 계단길이 시작된다. 긴 나무계단을 완전히 벗어나면 불모산쪽으로 산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꺾어 남쪽으로 향한다. 바위지대인 시루봉 정상은 동쪽 사면으로 우회한다. 바위 정수리로 오르기 위해서는 다소 위험해 보이는 밧줄을 타고 올라야 한다.
이후 숲길을 따라 잠시 나서면 산 봉우리에 우뚝솟아 있는 솟아있는 시루바위가 보인다. 30분이면 시루바위까지 갈 수 있다.
시루바위에서 지그재그로된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서면 정자가 있는 갈림길에 닿는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자은본동 삼성아파트 방향으로 하산한다. 자은본동 쪽으로 하산하지 않고 능선을 타고 30분 가면 시루봉 줄기 끝의 천자봉에 이른다.





























































시루바위

시루봉 정상에 우뚝 솟은 거암 시루바위(시리바위, 웅암, 곰바위, 곰메라고도 함)는 높이가 10m, 둘레가 50m나 되며, 조선시대 명성황후가 순종을 낳은 후 세자의 무병장수를 비는 백일제를 이 시루바위에서 올렸다고 전해진다. 쾌청한 날에는 멀리 대마도가 보이는 이 시루바위에는 조선시대 웅천을 일본에 개항하였을 때 웅천을 내왕하는 통역관을 사랑하게 된 기생 아천자가 이 바위에 올라 대마도를 바라보며 기약없이 떠난 님을 그리워 했다는 애달픈 사랑 이야기도 전해진다.




















천자봉 명당의 전설


옛날 함경도 땅에 이씨(李氏)성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조상의 묘터를 찾기 위하여 팔도강산을 두루 섭렵하며 태백산맥을 따라 내려 오다 지리산을 거쳐 낙남정맥을 헤메이다, 이곳 곰내(熊川)마을 웅천에 이르게 되었다. 천자봉(天子峯) 꼭대기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던 이씨의 눈에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팔도를 헤매며 찾았던 명당터가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이곳 바위에 구멍이 둘 있으니 첫째 구멍에 묘(墓)를 쓰면 자손 중에 왕이 나올 것이요, 둘째 구멍에서는 천자가 나올 것이 틀림없는 천하의 명당을 찾았으니 어찌 흥분되지 않으리요.
 그는 즉시로 데리고 온 하인에게 자기 선대의 묘를 둘째 구멍에 이장 하도록 일렀다. 주인의 분부를 받은 하인은 이때 슬그머니 딴 욕심이 생겨 둘째 구멍에 자신의 선대 묘를 이장하고, 첫째 구멍에 주인 이씨의 선대 묘를 감쪽같이 이장 하였다.
세월이 흘러 두 집안에 비범한 인물이 났으니, 이씨 문중에는 이성계(李成桂)라는 인물이 나와 조선을 개국하여 태조가 되었고, 하인 주씨 집안에도 인물이 났으니 그가 바로 명(明)나라의 천자 주원장(朱元障)이라 전한다.


천자봉 강철 전설

진해 장천동 뒤편에 천자봉(465m)이 있다. 이 천자봉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천자봉에는 못이 있었고 그 못에는 용이 못된 강철이 살고 있었다. 강철은 언제나 인가에 내려와서 주민들을 괴롭히고 가축을 해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항상 불안 속에 살고 있었다.
이것을 안 염라대왕은 사자를 보내 등천화룡도 되지 못하면서 못된 짓만 하는 강철을 잡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워낙 사나운 강철인지라 사자가 잡아오지 못하자 염라대왕은 노하여 기어이 데려오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강철을 사로잡아 갈 수 없다고 판단한 사자가 강철을 꾀었다. "용이 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죽어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대국의 천자가 되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 말을 들은 강철은 그 말에 응해 스스로 바위에 머리를 부딪혀 죽고 말았다. 강철이 죽자 죽은 강철의 입에서 파랑새가 한 마리 나와 천자봉 지붕 아래에 있던 백일마을의 주씨 집으로 날아 들어갔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주씨 부인은 잉태를 하게 되었고 열달 후는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입산수도 생활하였는데 머리가 영특하며 노는 것도 남 다른 데가 있었다. 무술놀이를 즐겼고 언제나 장수노릇을 했다.
그런데 그는 언제나 왼손을 쥐고 있었다. 놀이를 할 때나 잠을 잘 때나 왼손 주먹만은 펴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동무들은 그가 잠자는 틈에 그의 왼손을 펴보았다. 그 아이의 왼손 바닥에는 대명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잠을 깬 그 아이는 매우 놀라 하며 같이 놀던 아이를 죽여 버리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후 그 아이는 명나라에 가서 무술을 닦아 명태조 주원장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 천자봉 아래에 있는 넓은 평지를 마당재라 하는데 주천자가 어릴 때 무술을 닦고 전쟁놀이를 하던 장소라 전하고 있으며 그가 태어진 집의 오른쪽에 있는 산등성일 그 장군목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