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사진

철원 관광

꽃거리 2013. 1. 28. 11:20

위      치 : 강원 철원군 근남면 잠곡리에 있는 산.

산행일자 : 2013년 1월27일

날      씨 :맑음

산 악 회  ;

산 행 지  : 복계산.매월폭포.도피안사.노동당사

산행시간 : 시간 분

산행거리 : .km

참가인원 :

산행코스 :

이동수단 ; 승용차

특이사항 ;

 

복계산은 대성산(1174.2m)에서 복주산(1151.9m)을 향해 뻗어나가던 한북정맥의 산줄기가 수피령을

막 지나온 지점의 마루금에서 오른쪽(북서쪽)으로 약 700미터 벗어난 거리에 빚어놓은 명산이다.

민통선 바로 아래 위치해 있어 산행의 감회가 남다르고 ‘신철원팔경’의 하나인 매월대(595m)와 매월대폭포,

1996년 SBS 특집드라마 ‘임꺽정’의 청석골세트장 등이 있어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복계산은 매월대로 더 잘 알려진 산행지다. 복계산 기슭에 위치한 높이 40미터의 절벽이 매월대로 전설에 따르면

아홉 선비가 매월대에서 바둑판을 새겨놓고 바둑을 두며 단종의 복위를 도모했다고 전해진다.
복계산을 산행한 후 승리전망대를 견학하면 안보산행으로서 금상÷화다. 그러기 위해서는 승용차나 관광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매월대주차장을 기점으로 복주산 정상에 오르는 코스는 매월대코스와 매월대폭포코스,

청석골세트장코스 등이 있는데 이중에서 매월대폭포코스로 올랐다가 청석골세트장으로 하산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산행포인트

복계산은 잠곡1리 매월산장 앞 주차장을 들머리로 원점회귀 산행하는 것이 좋다. 매월대폭포 가는 길로 들어서

250미터 정도 가면 폭포에 도착한다. 폭포에서 북쪽으로 오른 후 바위지대를 지나고 헬기장을 지난 후

가파른 능선을 오르면 녹슨 철조망 울타리 잔해를 따라 등산로가 이어진다. 삼거리에서 5분 정도 오르면

복계산 정상이다.
올라온 길로 되돌아 하산을 시작한다. 100미터 정도 내려간 지점 갈림길에서 직진하는 내리막 능선을 버리고

왼쪽 사면으로 들어선다. 안부를 지나고 작은 암봉을 우회하면 884봉에 오른다. 무덤을 지나고

가파른 내리막을 따라 이어지는 계곡으로 한참을 내려서면 굴곡계곡과 만나는 합수지점에 도착한다.

굴곡계곡에서 오른쪽으로 건너가면 폭포산장이 있고 이어서 청석골세트장에 들어서게 된다.

복계산 산행은 인기드라마 임꺽정 촬영 세트장과 북녘 땅을 조망할 수 있는 테마가 있는 산행 지이다.
민통선 지역내에 있는 한북정맥 구간이 적근산과 대성산을 지나면 비로서 민통선을 벗어나는 수피령이 되는데

이 수피령에서 첫 번째 봉우리인 1010봉에서 북서 쪽으로 약 1.5km거리에 정맥을 이탈하여 치솟은 산이

바로 복계산이다.
그리고 한북정맥은 1010봉에서 남으로 복주산 - 회목봉 - 광덕산 - 백운산 - 국망봉 - 개이빨산 - 민드기봉 -

강씨봉 등등으로 그 맥을 잇는다.
일동 - 이동을 거쳐, 와수리를 지나 육단리에 이르면 좌측 다목리 방향의 길 말고 ,우측으로 잠곡리 방향의 길이

나타나는데 그 잠곡리 방향으로 약 5km쯤 더 들어서면 그곳이 바로 복계산의 산행 깃점이 되는

매월동 마을로서 서울에서 약 3시간 남짓 소요된다.
매월동 매월산장 앞 주차장에 이르면 우선 좌측으로 우뚝 솟아있는 매월대 암봉이 눈길을 끈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했던 곳이라는 안내문이 산장 앞에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우측 계곡가에는 초가산간 몇 채가 보이는데 임꺽정을 촬영하기 위해 꾸며 놓은 것이라고 한다.

①매월대주차장 - (15분) - 매월대폭포 - (45분) - 헬기장 - (30분) - 정상 - (30분) - 844봉 - (15분) -

무덤 - (45분) - 청석골세트장 - (5분) - 매월대주차장
○ 매월동(매월산장) - 매월대 폭포 - 북동릉 - 헬기장 - 정상 - 남서릉 - 임꺽정 촬영 초가집 -

매월동 (약 8 km 4 시간 )
○ 복계산~복주산종주 코스

수피령(1.5km, 50분)~980m봉(1km, 25분)~칼바위(2.9km, 1시간10분)~941.9m봉(2.2km, 45분)~

950m봉(2.2km,1시간~1,060m봉(2.5km, 1시간)~복주산(2.6km, 1시간10분)~하오현(약 14.9km, 약 6시간20분 소요)
등산기점; 잠곡1리 매월대폭포 입구 안내판을 따라 들어가면 왼편에 매월대 산장과 주차장이 있다.
매월대 산장에서 계곡쪽으로 약 30m를 가다 왼편으로 갈라지는 급경사 돌길은 동굴 경유 매월대로 이어지고,

매월대 산장에서 바른길은 계류 2개소를 건너 매월대폭포 경유 840공터로 이어지는 두 길이 대표적이다.

○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1일 6회(11:20~17:50), 상봉터미널에서 1일 4회(06:50~18:00) 운행하는다목리행

직행 버스편을 이용해 늑동에서 하차,
걸어서 수피령으로 올라가거나, 동서울터미널에서 1시간 간격(07:20~19:10),

상봉터미널에서 1일 10회(06:50~19:40) 운행하는 사창리행 버스를 이용한 다음, 갈아타고 다목리로 가서 택시편을 이용해 수피령으로 오른다.

광덕상회 앞에서 사창리나 다목리 발 서울행이 선다

 

 

 

 

 

 

어늘  복계산을 오르려 했으나 들머리에 들어서니 산행 할 기분이 나질 않는다

하는수없이 매월대 폭포을 구경하고 철원의 관광지을 돌아보기로 하소

라쉬움을  달래면서 발길을 돌리는수밖에..

 

 

매월대(梅月臺)  

 

강원도 철원군의 중동부 근남면 잠곡리에 위치한 절벽이다.

매월대는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1435~1493) 선생과 8의사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비분한 나머지 관직을 버리고 이 일대 산촌으로 은거하여 소일하던 곳으로, 복계산(1,057m) 기슭에 우뚝 솟은 높이 40m의 깎아 세운 듯한 절벽 바위이다.

전설에 따르면 아홉 선비는 이 바위에 바둑판을 새겨놓고 바둑을 두며 단종의 복위를 도모했던 곳이라 전해오며 그 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김시습의 호를 빌어 매월대라 부르고 매월대 정상에서 동쪽으로 1km 정도에는 매월대 폭포가 있어 사계절 장관을 이루는 명소이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화개산에 있는 도피안사(到彼岸寺)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철원은 국토의 중심에 자리한 아주 특별한 땅으로

궁예가 이상세계의 구현을 꿈꾸던 태봉국의 도읍지이다.

그 이상세계 피안(彼岸),

그곳에 다다르게 하는 도피안사(到彼岸寺)는

철원의 신비한 전설을 상징하고 이야기하고 있다.

 

도피안사의 피안은 속계 차안(此岸), 그 건너 세상이다.

불가에서는 깨달음의 세계나 미륵이상세계 불국정토를 의미한다.

인류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우리가 염원하는 피안인 것이다.

생사의 경계인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인 열반에

이를 때 도피안이라고 한다. 산스크리트 파라미타(Paramita)를 음역한 도피안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의 불국정토의 세계에 도착한 도피안사이다.

 

도피안사 법당 대적광전 앞에 세워져 있는 3층석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그 구조가 특이해서 보통 4각의 돌을 이용한다.

여기에서는 8각 모양의 돌로 높게 2단을 쌓았다.

아래층 기단의 8면에는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다.

이 기단의 맨 윗돌에는 윗층 기단을 괴기 위한 높직한 8각의 괴임돌이 놓여져 있다.

이곳에는 연꽃무늬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윗층 기단은 매우 높으나 각 면에 꾸밈이 없다.

다만, 기단의 맨윗돌 아랫면에 다소 두툼한 느낌의 연꽃무늬를 조각하여 둘러 놓았다.

탑신과 닿는 곳에는 높은 3단의 받침을 두어 1층 몸돌을 괴도록 하였다.

이러한 기단의 꾸밈새는 석탑의 기법이라기보다는 불상의 기단 기법으로 보인다.

덮개돌 윗면의 높은 괴임형식은 9세기 통일신라의 석탑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수법이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에 각각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다.

각 층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층은 4단, 2·3층은 3단이다.

조각이 얕아서 다소 무거워 보이긴 하나,

네 귀퉁이가 한껏 위로 들려 있어 아름다운 모습이다.

기단의 꾸밈새에서 보이는 특이한 양식,

지붕돌 받침이 4단, 3단으로 일정치 않은 점 등이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임을 보여준다

이곳 도피안사는 유서깊은 천년고찰이다
통일 신라 시대인 865년(경문왕 5)에 도선 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당시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을 조성하여 철원에 있는 안양사(安養寺)에

봉안하기 위해 암소 등에 싣고 운반하는 도중에 불상이 없어졌다.

사방으로 찾아보니 현재의 도피안사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도선국사가 그 자리에 절을 세우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도선국사가 향도 1,000여명을 거느리고 천하에 산수가 좋은 곳을 찾던 중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과 같은 곳에 사찰 이름을 도피안사로 명명했다고 전한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이 시기에 가장 유행한 형태로,
상대와 하대에는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중대는 8각을 이루고 있다.
불상 뒷면에 신라 경문왕 5년(865)에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남아 있어서

만든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철조비로자나불상의 새로운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능숙한 조형수법과 알맞은 신체 비례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궁예는 태봉국을 창건하고 이 도피안사의 주지로

의누이인 혜원스님을 모신다.
궁예와 도피안사 주지 혜원은 가슴 아픈 사연을 안고 있다.
혜원은 신라 제 46대 문성왕 13년 서기 851년에 계림부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금성태수 김융이요, 어머니 는 경주 최씨였다.
아버지 김융이 신라 제 48대 임금인 경문왕(서기 861~874년)이
승하하여 궁중으로 들어가는 도중 경문왕의 제2비 소생인 용덕왕자(龍德王子 : 弓裔)가
욕을 당하는 것을 보고 구출하려고 하다가 상대 위홍(魏弘)등에게 몰려
대역부도(大逆不道)의 역적 누명을 쓰고 죽게 된다.
이때 가산이 탕진되고 집안이 적몰된다.
혜원은 24세의 젊은 나이로 몸을 태백산 세달사로 몸을 피하여

허담 화상에게서 계를 받고 스님이 되었다.

혜원은 18세가 되어서 화랑도이었던 예흔랑에게 출가하였다.
20세 되던 해 예흔랑은 국선(國仙 :花郎)으로서 금강산에 들어간 뒤로 계속 소식이 없었다.
그 때 혜원은 친정아버지 금성태수 김융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가
아버지 김융이 역적으로 몰려 죽으므로 몸을 세달사로 피하여 스님이 되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몇해 뒤 우연히 용덕왕자(궁예)가 세달사로 찾아와서 허담스님의 상좌가 되었다.
세달사에 있는 동안 혜원비구니는 용덕왕자인 태허스님을 극진히 아끼고 보호하였다.
신라 제 51대 진성여왕 5년에 나라가 어지럽고 각지에 반란이 일어나자
용덕왕자인 태허스님은 스님의 수도생활에서 인연을 등진다.
그는 기훤의 부하가 되었다가 다시 양길의 부하가 되어 중을 세우고
진성여왕 8년(서기 894년)에는 명주(溟州)·철원(鐵置.鐵原)을 함락한 뒤
독립하여 장군을 자칭하고, 이듬해 강원도 일대를 세력권 아래에 두어
나라의 규모를 갖추었다.
궁예는 신라 제 52대 효공왕(孝恭王) 5년 (서기901년)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후고구려라 칭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른다.
혜원 비구니의 나이가 57세 되던 해에 궁예왕은 혜원 비구니를 청하여
철원의 화개산에 있는 도피안사에 주석(住錫)케 하고
가끔 궁중으로 모시어 연석(宴席)을 배설하고 공양을 올리기도 하였다.
이 때 혜원비구니는 왕비 난영이와 친밀하게 되고,
왕비 난영의 소개로 궁예왕의 신하인 왕건을 알게 되었다.
도선은 왕건의 아버지 왕융에게 유서를 보낸다.
"후일 왕융의 아들 왕건이 왕위에 즉위하거든 즉시 10대 사찰을 지으라.
또 국내에 모두 3천 8백 비보사찰(裨補寺刹)만 짓도록 하라."
그는 왕씨 왕조는 이(李)씨의 왕조가 일어날 한양의 지기(地氣)를 억누르기 위해
개성 주변에 10개의 절과 전국에 3,800개의 비보사찰을 짓도록 하였다.
도선 국사가 열반한지 20년 만에 과연 왕건은 고려의 태조가 되고 삼국을 통일하였다.
왕건은 국사의 유언대로 즉위 2년에는 개경을 중심으로 10대 사찰을 지었고
즉위 5년에는 한양에 청룡사를 창건하여 혜원(慧圓)비구니를 초대 주지로 모시게 하였다.

"금학산을 진산으로 도읍을 정하면 국운이 300년에 이를 것이나
고암산을 진산으로 고집하면 30년을 넘지 못할 것이다"
도선국사는 궁예에게 조언한다.
충신 아지태를 비롯한 여러 신하들도 도선국사의 예언을 거론하며
금학산을 진산으로 정해야 한다고 간청했다.
태봉국의 진산은 고암산으로 해야 한다는 궁예의 고집을 아무도 꺾질 못했다.
궁예가 고암산을 선택하자 금학산은 사흘 밤낮을 울었다고 한다.
금학산 수목들은 죽지 않았는데도 3년 동안 잎이 나지 않았고,
산에서 나는 취나물은 써서 먹지 못했다고도 한다.
결국 도선의 예언대로 궁예는 나라를 세우고 26년 만에 몰락한다
 

철원의 백마고지 인근에 위치한 북한 노동당사

시멘트 건물의 우중충한 퇴색 때문일까? 

쳐다만 봐도 흉가처럼 으스스해 뒷걸음쳐진다.

해방 직후에 세워 한국전쟁 때까지 사용한 조선 노동당 철원군 당사였다.

조선 노동당은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으로 1개 마을 당 쌀 200가마씩을 거뒀다고 한다.

분단 탓아다. 그 처참한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을 노동당사는 지금도 흉물스럽다.

검게 그을린 3층 건물의 앞뒤엔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고 계단을 타고 올라가 보면

안의 벽조차 허물어져 있다.

한국전쟁 전까지만 해도 철원에는 2만여 명의 사람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 시가지가 하루아침에 초토화되어 송장처럼 누워있는 것이다. 시가지뿐만이 아니다.

백마고지에서는 30만발이나 되는 포탄이 작렬했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삽슬봉은 산 높이가 3m나 깍여 나갔다고 한다. 삽슬봉은 미군 조종사들이 공중에서 보니 폭격 맞는 사이 마치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내렸다고 해서 아이스크림 고지로 이름이 바뀌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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