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금곡사.백련사.무위사.월남사지.탐방
位 置: 전남 강진군 일원
여행일자: 2013년9월11일
카메라 : 삼성nx20,라이카
날 씨 :
산악회 :
여행지 : 금곡사.백련사.무위사.월남사지
인 원 :
여행거리: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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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시간:
숙 박 :
특 징 :
금곡사(金谷寺) 소개
한국불교 태고종에 소속된 사찰로, 신라 선덕여왕 때 밀봉(密奉)이 창건하였다.
밀봉은 당시 밀종(密宗)의 큰스님으로 이 사찰을 창건하고 성문사(城門寺)라 했다고 전하나
당시는 삼국이 통일되기 전이므로 신라 승려가 백제 땅에 사찰을 세우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신빙성이 없다.
다만 사찰 입구 양쪽에 깎아지른 석벽이 있어 사찰 이름을 성문사라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성종12년(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는 금곡사라고 나와 있으나 사찰명이 바뀐 시기는 알 수 없다.
선조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훈련장으로 활용하다가 왜군의 침략으로 소실했다.
정조23년(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이미 폐사되었다고 나와 있어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절터에 건물을 중건하였고, 1969년에는 김성활이 불당과 요사를 재건하였다.
1984년 혜선이 관리를 시작하면서 태고종 사찰이 되었다.
당우로는 대웅전과 칠성각·범종각·천불전·명부전·일주문 등이 있다.
이중 대웅전은 본래 무량수전이었으나 최근 전각명을 바꾸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약사불 등 삼세불을 모셨다.
후불탱화로 영산회상도가 있으며 지장도·칠성도·제석천룡도·독성도 등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유물로는 1985년1월8일 보물 제829호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석등 대좌, 범종, 불화 6점 등이 있다.
금곡사삼층석탑은 백제 석탑의 양식을 따른 석탑으로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는 오층이었으나 현재는 삼층만 남아 있으며, 전체 높이는 5.4m이다.
1988년 6월에 해체하여 복원할 때 부처님 사리 32과가 발견되었다.
이 사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진신사리로 주홍색을 띠며,직경3mm, 두께 2mm의 타원형이다.
이는 불국사 석가탑, 월정사 석탑에 이어 세 번째 발견이다.
석등대좌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절 입구 길가에 있다.
범종과 불화는 모두 1970년대 이후 조성된 것으로 문화재적인 가치는 없다..
금곡사 3층석탑
고려초기의 불교유적이면서도 백제계 석탑의 양식이 엿보이는 작품이어서 일찍부터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켜 오고 있다.
석탑이 위치한 금곡사는 조선초기에 간행된『신증동국여지승람』(1531) 37권 강진 불우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간행된『범자공』에 이미 폐찰되었다는 내용이 있으며,
18세기 이후에 간행된 『여지도서』,『동국여지지』,『호남읍지』 등의 책자에는
사찰명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로 미루어 금곡사는 18세기 이전까지는
사찰로서의 규모를 갖추어 현재에 이른다.
석탑은 기단중석의 전·후 측면에서 각기 1매씩의 판석이 유실된 상태였고 유석에서도
부분적으로 파손되어 원형의 모습을 잃은채 보존되어 왔었다.
그러던 중 1988년 6월 10일부터 6월23일까지 약 2주간에 걸쳐 해체·복원공사를 실시하였으며,
이때 세존진사리 32과가 발견되어 이 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였다.
김삿갓(김병연)詩碑
이곳에서 몇 발짝을 떼어 놓으면 삿갓하나에 지팡이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삼천리 방방곡곡을 유랑한 방랑시인 김삿갓이 까치내재를 넘다 금곡사 기암괴석 석문을 접하고 남겼다는
시 한 수가 시비에 담겨 세워져 있다.
雙岩竝起疑紛爭 / 一水中流解忿心
(두 바위가 나란히 솟아 다투는가 여겼는데 한 줄기 물 가운데로 흘러 성낸 마음 풀어주네)
백련사
백련사(白蓮寺)는 전라남도 강진군 월출산(月出山)에 자리한 한국불교조조계종 사찰이다.
월출산은 만덕산(萬德山)이라고도 하는데, 이 같은 산 이름으로 인해 조선시대 한 때는 만덕사라고도 불렀다.
통일신라 때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했고, 고려에서는 원묘 국사 요세(了世) 스님이 중창했다.
요세 스님은 이 절을 커다란 규모로 짓고 자신의 법맥을 이곳에 전했다.
백련사는 ‘白蓮社’라고도 쓰는데, 그것은 요세 스님을 비롯하여 그의 제자인 천인?원환?천책 스님 등이
이곳에서 대대로 백련결사를 성대하게 베푼 데에서 유래되었다.
백련사에서 눈에 띠는 전각은 누각인 만경루. 조선시대 중기에 지은 2층 건물로 ?萬景樓? 편액은
조선시대 후기의 명필 이광사(李匡師)가 쓴 것이다.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의 편액 글씨도 그의 작품.
만경루에 오르면 멀리 남해 바닷가가 한눈에 조망된다. 여기에서 바라다 보이는 강진만의 모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그리고 멀리 강진만 너머에는 고려 청자가 만들어진 사당리가 있다.
백련사에서 볼 수 있는 명물 가운데 하나는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동백림(冬柏林).
만경루 아래에 자리한 부도밭 위쪽으로 울창하게 우거진 동백나무숲은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들만큼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겨울과 봄 사이에 붉은 색으로 피어나는 이 백련사 동백꽃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예로부터 이곳의 경치를 읊은 시가 많았고, 제 철에 이 동백꽃을 못 봐서 한스러워 했던 시인묵객도 많았다.
만경루에서 바라보는 남해와 더불어 백련사의 경승으로 꼽혀온 것은 당연했다
*보물 제507호 무위사선각대사편광탑비(無爲寺先覺大師遍光塔碑)
선각대사편광영탑과 나란히 서있는 이 탑비는 선각대사 형미(逈微)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고려 정종 원년(946)에 건립되었다.
선각대사는 신라 말의 명승으로, 당나라에 건너가서 14년만에 돌아와
무위사에 8년간 머물렀다.
고려 태조 원년(918)에 54세의 나이로 입적하자 고려 태조가 ‘선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이름을 ‘편광탑’이라 하였다. 이 비는 대사가 입적한 지
28년만에 세워진 것이다.
문화재자료제76호 (강진군) 무위사삼층석탑(無爲寺三層石塔)
무위사 극락전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는
기단(基壇)을 2층으로 두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기단은 각 층의 4면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는데, 아래층은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위층은 모서리에만 두었다.
특히 아래층에는 기둥조각으로 나뉜 8곳에 안상(眼象)을 세밀하게 새겨 장식하였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져 있고,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얇고 평평해 보이는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양쪽가에서 가볍게 위로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세 개의 머리장식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다.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그 크기가 적당히 줄어들어 있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탑으로, 비록 1층과 3층의 지붕돌이 약간 깨져 있긴 하나
대체로 원래의 모습이 잘 간직되어 있다.
만든 시기는 뒤에 서있는 선각대사편광탑비(945년에 만들어짐)와 같은
때이거나 그보다 조금 떨어지는 고려시대 전기일 것으로 추측된다.
월남사지가는 녹차밭
월출산
시도기념물 제125호 (강진군) 월남사지(月南寺址)
월남마을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월남사터이다.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시대에 진각국사
(1178∼1234)가 세운 것으로 되어있지만, 경내 삼층석탑의 규모나
양식으로 보면 그 이전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폐사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으나 이 일대의 절이 정유재란 당시 병화로
소실되고 ‘무위사’만 남았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정유재란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양쪽편으로 삼층석탑과 진각국사비가 있다.
최근에 삼층석탑 근처 민가에서 석탑의 지붕돌이 발견되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2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발견된 지붕돌의 세부기법이 월남사터에 있는
백제계 양식인 삼층석탑과는 다른 신라계 양식의 기법이라는 점이다.
한 절터에서 백제계 석탑과 신라계 양식의 석탑이 함께 자리하게된
이유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진각국사를 기리기 위해서 세운 진각국사비는 비석의 위쪽이 깨져 없어졌고,
앞면 일부도 떨어졌으나 남아있는 바닥돌과 거북의 기세, 비석의 폭으로
보아 매우 웅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금당터 초석,
축대가 남아있으며, 옛 기와, 청자, 백자조각이 츨토되고 있다.
*보물 제298호 월남사지삼층석탑(月南寺址三層石塔)
월남사터에 남아있는 삼층석탑으로,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