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관촉사
● 위 치 : 충남 논산시 은진면 관촉리 반야산에 위치
●출사일자 : 2014년8월3일
● 날 씨 : 흐림
● 카 메 라 : DSLR캐논 EOS 70D.
● 출 사 지 :
● 인 원 :
●출사 코스: 논산 관촉사
●출사 시간:
●이동 수단: 승용차
● 숙 박 :
● 특 징 :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관촉사
-관촉사 은진미륵(灌燭寺 恩津彌勒)-
관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본사 마곡사)’ 의 말로써 충남 논산시 관촉동 254번지 반야산 기슭에 자리잡은
미륵부처님의 성지입니다.
관촉사가 자리잡은 논산에는 많은 설화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중 염라대왕의 설화는 유명하여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왔습니다. 예로부터 전해오길 염라대왕은 저승에 논산사람들이 오면 물어보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개태사의 가마솥"과 "강경의 미내다리" 그리고 "관촉사의 은진미륵"을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만큼 논산의 유명한 보물이기에 전해오는 말입니다. 그중 단연 논산제1경에 꼽히는 것이 ‘은진미륵 부처님’입니다.
은진미륵부처님의 가피가 살아쉼쉬는 천년미륵도량 관촉사입니다.
관촉사의 미륵부처님을 은진미륵이라 부르는 것은 예전 논산지역은 은진과 노성으로 크게 행정구역이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바로 관촉사 미륵부처님께서 계신 지명이 ‘은진’이었기 때문입니다.
관촉사(灌燭寺) 은진미륵(恩津彌勒) 부처님은 서기968년 고려 광종때 모셔진 것으로 전해옵니다.
전해오는 창건 설화에 의하면 한 여인이 관촉사가 자리잡은 반야산(盤若山)에 고사리를 꺾으러 갔다가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산속에서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가 이상하여 가보니
아이는 없고 큰바위에서 아이 울음소리만 들렸다고 한다.이 소문은 고려 조정에까지 퍼졌고,
광종(光宗)은 당시 최고의 고승이었던 혜명(慧明)을 불러, 그 바위로 불상(佛像)을 만들라고 명하였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은진미륵 부처님께서 자리잡게 되었으며 관촉사가 창건되었다고 전해옵니다.
관촉사 (灌燭寺)의 유래
38년간에 걸친 불사가 완성되고 1006년(목종)에 드디어 높이 18.1m 둘레 11m 귀의 길이만 해도 3.3m에
이르는 동양 최대의 불상이 968년 모셔졌습니다. 그때 미륵부처님의 미간의 백호 수정(水晶)에서
찬란한 빛이 발하여, 중국 宋나라에 까지 이어졌으며, 그곳의 지안(智安)이라는 고승이 빛을 따라
찾아와 배례한 뒤 "마치 촛불을 보는 것 같이 미륵이 빛난다"라고 하면서 사찰 이름을 관촉사(灌燭寺)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관촉사의 보물
관촉사 경내에는 석조미륵보살입상(石造彌勒菩薩立像 보물 218호)을 비롯하여 석등(石燈.. 보물 제232호),
연화배례석(蓮花拜禮石), 사적비(事跡碑), 관음전, 삼성각, 석조(石造) 해탈문(解脫門) 등이 있습니다
대광명전(大光明殿)
관촉사 대광명전입니다. 관촉사 대광명전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주불로 모셔져 있습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은 산스크리트어로 '마하바이로차나(Mahāvairocana)'라고 하며 '두루 빛을 비추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태양'을 뜻하기도 하는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온누리에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흔히 대적광명, 대광보전등으로도 불리워집니다. 대적광전의 본졸불은 연화장세계의 교주이신
비로자나 부처님이십니다. 연화장세계가 진리의 빛이 가득한 대적정의 세계라하여 대적광전이라 불리웁니다.
소의경전인 '화엄경'을 근거로 하여 화엄전,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다는 뜻에서 비로전이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화엄종 계통의 사찰에서는 보통 대적광전을 큰법당으로 삼습니다.
대적광전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을 중심으로 한 삼신불을 모십니다. 따라서 법신불인 비로자나 부처님,
보신불인 아미타 부처님, 화신불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봉안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러나, 관촉사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많은 수의 선종사찰에서는 선종의 삼신설에 따라
청정법신 비로자나 부처님, 원만보신 노사나 부처님, 천백억화신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십니다
관촉사 석탑
관촉사 석등과 배례석 사이에 위치해있는 5층석탑입니다. 원래 5층석탑이이었으나
세월의 흔적과 파손등으로 현재는 4층의 모습을 하고 있는것으로 전해집니다.
관촉사 배례석 ( 시도유형문화재 제 53호 (1976.01.08 지정)
관촉사 배례석은 장방형으로 상면에 연화문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장방형의 대석으로 바닥에 2단의 직각 괴임을 마련하였고, 그 위의 면석에 안상(眼象)을 조각하였다.
안상은 긴 변에 세 개, 짧은 변에 두 개를 조식하였고, 그 안에 고사리무늬 같은 것을 양각하였습니다.
1단의 면석 위에 2단의 괴임이 있으나 서남향의 면석은 마멸되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배례석 상면에는 복판 8엽 연화문 3구가 조각되어 있으며, 연꽃은 판단첨형의 연화돌 대문이며 가운데에는
커다란 자방(子房, 씨방)이 융기되어 있습니다. 또한 연꽃은 단판(單瓣) 8엽이고 중앙에는
커다란 원좌(圓座)가 있으며, 그 안에는 가운데에 1개, 주변에 8개의 자방(子房)이 연주문(蓮珠文)처럼
음각으로 돌려져 있습니다.
연꽃의 잎 끝은 뾰족하며, 그 사이에 다시 중판의 연꽃잎이 뾰족하게 양각되어 있습니다.
연화문 사이에는 약간 작은 연화 두 송이가 양각되어 있습니다.
배례석의 길이는 204㎝, 너비 103㎝, 높이 40㎝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고려시대의 배례석으로, 연화문의 장식 등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관촉사 석등 / 보물 232호 / 지정일 1963.01.21
관촉사 앞뜰의 미륵부처님 앞에 놓여있는 4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이 중심이 되어,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습니다.
평면이 정사각형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고려식으로,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 새겨진 굵직한 연꽃무늬가
두터움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운데받침은 각이없는 굵고 둥그런 기둥으로 세웠는데, 위아래 양끝에는 두줄기의 띠를 두르고,
중간에는 세줄기의 띠를 둘렀다. 특히 중간의 세 줄기 중에서 가장 굵게 두른 가운데 띠에는
8송이의 꽃을 조각하여 곱게 장식하였다. 2층으로 이루어진 화사석은 1층에 4개의 기둥을 세워
지붕돌을 받치도록 하였는데, 기둥이 빈약한 반면 창은 널찍하다. 각 층의 지붕들은 처마가 가볍게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네 귀퉁이에는 큼직한 꽃 조각이 서 있어 부드러운 조화를 이룬다.
꼭대기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큼직한 꽃봉오리모양의 장식을 두었습니다. - 글 자료출처 : 문화재청 -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보물 218호 / 지정일 1963년 1월21일)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218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8.12m, 둘레 9.9m로 국내 최대의 석불입니다.
968년(고려 광종 19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006년(목종 9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천연의 화강석 암반 위에 허리 아랫부분, 상체와 머리부분을 각각 하나의 돌로 조각하여 연결하였습니다.
머리에는 구름무늬 같은 머리카락이 조각되어 있고 그 윗부분의 관까지는 정으로 다듬은 흔적이 있고,
관은 8각형으로 깎았다. 그 위에 2중의 보관을 올리고 관의 네 귀에는 청동제 풍경을 달았습니다.
얼굴은 이마가 좁고 턱이 넓은 역제형(사다리꼴)으로 [눈이 옆으로 길게 돌아갔고 코, 입, 귀는 모두 크다.
굵은 목에는 3도가 있고,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며, 좁은 어깨에는 법의가 걸쳐져 있고,
양손은 가슴까지 들어올려 한손에는 연꽃가지를 들고 있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습니다.
관촉사 석문(해탈문) 문화재자료 79호
관촉사 석문은 암반 위에 세워져 있는데, 석문에 사용된 석재는 화강암으로 전면이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바깥 너비는 194㎝이고 안 너비는 137㎝이며, 바깥 높이는 196㎝이다.
석문 자체의 높이는 180㎝, 너비 200㎝이다. 사찰 입구 양쪽에 돌기둥을 세우고
윗면 천정에 다섯 개의 장대석을 얹음으로써 4각형(터널형)의 석문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돌기둥은 너비 40㎝의 직사각형으로 다듬어져 있다. 문기둥의 오른쪽에는 ‘관촉사
왼쪽에는 ‘해탈문(解脫門)’이라 음각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