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位 置 :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산 74-2에 위치
☞카 메 라 ; DSLR캐논 EOS 70D
☞산행일자 : 2014년8월17일
☞날 씨 : 흐리고 비
☞산 악 회 ;
☞산 행 지 : 공주 태화산(泰華山)416m
☞산행시간 : 3시간30분
☞산행거리 :
☞참가인원 :
☞산행코스 :주차장~은적암~백련암~활인봉~니발봉~
불교문화원~영은교~마곡사
☞이동수단 ; 승용차
☞숙 박 :
☞특이사항 ; 산림청 100대명산선정 이유:
공주 태화산(泰華山)소개
공주 태화산(泰華山)은 공주시에서 북서쪽으로 약 25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 십승지(十勝地)의 한 곳이다.
공주에서도 태화산을 물러보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지만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마곡사(麻谷寺)로 더 이름이 나 있는 곳이다.
천년고찰 마곡사(麻谷寺)는 북쪽으로 태화산, 동쪽에 무성산, 서쪽에 철승산 등 높은 산이
사방을 둘러 싸고 있는 지형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十勝地)로 택리지(擇里志)나 정감록(鄭鑑錄) 등에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로 임진왜란이나 6.25 피해를 입지 않았다 한다.
마곡사라는 명칭은 이 지역에 마(麻)가 많이 재배되던 골짜기(谷)란 뜻으로,
백자 의자왕 3년(서기 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할 때 그의 스승인 마곡 보철화상을
기려 이름을 붙였다 하기도 하고, 신라 보철화상이 법문을 열때 모인 대중이 삼밭의
삼대(麻) 같이 많다하여 이름 지은 것이라 한다.
마곡사 기둥은 둘레가 2m가 넘는 싸리나무로 되어 있는데 모두 반들반들하다.
그 이유는 사람이 죽어서 염라대왕 앞으로 가면 이 기둥을 안아 봤느냐고 물어보는데
그런 일이 없다면 지옥으로 보내고, 안아본 사람은 극락 세계로 보낸다는 전설이 있어
이 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은 몇번이고 이 기둥을 안아 보았기 때문이란다.
춘마곡(春麻谷) 추갑사秋甲寺)라 전해질 만큼...
마곡사는 봄의 정취가 그야말로 물씬 묻어나는 곳이다.
태화산은 천년 고찰 마곡사(麻谷寺)를 품고 있는 산으로 더 이름이 나 있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고
옛 선인들도 경탄해 마지 않으셨듯이, 마곡사의 봄은 예부터 그 이름이 높다.
마곡사는 특히 정감록에서 말하고 있는, 전란을 피해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전국 ‘10승지(十勝地)’에 들어 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젊은 시절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일본인 장교를 때려죽인 백범이
이곳 마곡사로 피신해 들어와 칩거하며 수행생활을 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고,
또 하천이 절의 경내를 태극모양으로 휘돌고 나가는 독특한 지형을 간직한 사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오늘 산행은 이 마곡사에서 수행하던 백범을 발자취를 따라 가기로 한 것.
태화산에는 이 마곡사를 기점으로 3개의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 제1코스(백범길/산책용): 마곡사-군왕대-영은교-삭발바위 (동쪽으로 도는 가장 짧은 코스, 약 3km)
▷ 제2코스(명상산책길/트레킹코스): 마곡사-활인봉-솔잎융단길 1km지점 갈림길-생골마을-마곡사(약 6km)
▷ 제3코스(송림숲길/등산포함 풀코스): 마곡사-활인봉-솔잎융단길-나발봉-황토숲길-
한국문화연수원-마곡사(약 10km)
마곡사 부도
은적암
백련암 마애불
임시정부 주석이셨던 김구선생이 청년시절인 한말
명성왕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쓰치다(土田壞亮)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처단하고 김구는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 백련암에 은거하여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출가 수도하였다
나발봉
마곡사 소개:
1172년 보조국사 지눌이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태화산에 중창한 사찰.
•(건립경위 및 변천)마곡사가 위치한 물과 산의 형세는 태극형이라고 하여 (택리지(擇里志), (정감록(鄭鑑錄) 등에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고 있다. 절의 창건 및 사찰 이름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전한다. 첫 번째는 충청남도 청양군 장곡사와 마곡사, 지금은 없어진 충청남도 예산시 안곡사 세 절을 이 지역에서는 삼곡사라고 불렀고, 긴골·삼골의 이름을 장곡(長谷)·마곡(麻谷)으로 바꾸었다는 설이다.
두 번째는 신라시대의 승려 무염(無染)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마곡사를 지을 때 스승인 마곡보철(麻谷寶徹)을 사모하는 뜻에서 마곡사라고 하였다는 설이다. 세 번째는 절을 세우기 전 이곳에 마씨(麻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기 때문에 마곡사라 하였다는 설이다.
마곡사는 신라시대 말기부터 고려시대 전기까지 약 200년 동안 폐사가 된 채 도둑떼의 소굴로 이용되고 있었는데, 1172년(명종 2)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제자 수우(守愚)와 함께 왕명을 받고 중창하였다. 지눌이 절을 중창하려고 할 때 도둑들에게 물러갈 것을 명하였으나 도둑들이 오히려 지눌을 해치려 하자 지눌은 공중으로 몸을 날리는 신술(神術)로써 많은 호랑이를 만들어 도둑에게 달려들게 하자 도둑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거나 착한 사람이 되겠다고 맹세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지눌은 왕에게서 전답 200결(結)을 하사받아 마곡사를 중창하였다. 당시에는 건물 수가 지금의 배가 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버렸다. 그 뒤 60년 동안 폐사된 채 방치되었다가 1651년(효종 2) 각순(覺淳)이 대웅전과 영산전, 대적광전 등을 중수하였다. 일제강점기 31본산(本山) 시대에는 충청남도 지역의 100여 사찰을 관장하는 본산이었다.
또한 마곡사는 김구(金九)[1876~1949]와 인연이 깊다. 김구는 대한제국 때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스치다 조스케[土田壞亮]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나루에서 죽인 뒤 붙잡혀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마곡사에서 승려로 가장하여 살았다. 지금도 대광보전 마당에는 김구가 심은 향나무가 있는데, 나무 옆에 ‘김구는 위명(僞名)이요 법명은 원종(圓宗)이다’라고 쓴 푯말이 있다.
•(현황)
주지는 승려 법용이다. 매월 음력 1~3일 사이에 초하루 법회, 음력 18일에는 지장재일법회를 열고 있다. 여름수련회와 겨울수련회를 비롯하여 2002년부터 템플스테이(Temple stay)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어린이법회, 목련회, 좌선회, 금강회, 합창단, 선수련회 등의 활동이 활발하다. 한편 마곡사가 위치한 태화산에 송림욕장을 개설하고 있다. 5~10년 된 적송의 사이를 따라 마곡사를 둘러싸고 있는 태화산의 능선에 개설된 등산로의 길이는 5㎞에 달하며, 이를 걷는 데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현재 마곡사는 70여 개의 말사(末寺)를 관장하고 있다. 마곡사는 ‘춘마곡추갑사(春麻谷秋甲寺)’라는 말이 있을 만큼 봄 경치가 뛰어나다. 백련암에서 바라보이는 전망은 매우 빼어나며, 북가섭암의 바위 뒤에 있는 천미장군수(天米將軍水)는 물맛이 좋기로 이름난 약수이다. 또 마곡사 앞 냇가 암벽에는 부여군 고란사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다.
(디지털 공주문화대전-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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