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명산 사진

(진안)마이산(馬耳山)

꽃거리 2014. 11. 16. 19:19

 행정구역 :전북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 127-1에 있는 산

카  메 라 :

언      제 : 2014년11월9일

어 디  로 : 마이산(馬耳山)서봉(암마이산) 685m, 동봉(수마이산) 678m

 선행시간 : 시간분

누 구  랑 : 명

산행코스 : 남부주차장 → 고금당비룡대~봉두동~ 암마이산 ~탑사 ~ 남부주차장

날      씨 :

교      통 :

숙      박 :

산의 특징 ;

특이사항 ;산림청 100대명산 선정사유;

특이한 지형을 이루고 있으며, 섬진강과 금강(錦江) 발원지이고 도립공원(1979년)으로

지정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중생대 백악기에 습곡운동을 받아 융기된 역암이 침식작용에 의하여 형성된 산으로

산의 형상이 마치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으로 불려짐. 암마이산 남쪽 절벽 밑에 있는 80여개의

크고 작은 돌탑이 있는 탑사(塔寺)와 금당사(金塘寺)가 유명하다

문화재로는 마이산탑(전북기념물 35), 마이산줄사철나무군락지(천연기념물 380)를 비롯하여

은수사(銀水寺)금당사(金塘寺) 등의 고찰이 있다. 금당사에는 괘불탱(掛佛幀:보물 1266),

목불좌상(전북유형문화재 18), 석탑(전북문화재자료 122) 등의 문화재가 있다.1979년 10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2003년 10월 국가지정 문화재인 명승 12호로 지정되었다.

● 마이산 소개

 

마이산(馬耳山)은 두 암봉이 나란히 솟은 형상이 말의 귀와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서

동쪽 봉우리가 숫마이봉, 서쪽 봉우리가 암마이봉이다.

중생대 말기인 백악기 때 지층이 갈라지면서 두 봉우리가 솟은 것이라고 한다.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사이의

448 층계를 오르면 숫마이봉 중턱의 화암굴에서 약수가 솟는다.

또한 두 암봉 사이에 낀 마루턱에서 반대쪽으로 내려가면 탑사에 닿는다. 세찬 바람에도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는 않는 돌탑들이 신기하다.

신비하게 생긴 바위산에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도민 휴양지로 지정되었으며

이갑룡 처사가 평생동안 쌓았다는 80여 무더기의 석탑과 함께 마이탑사가 유명하다.

탑사, 은수사,금당사, 북수사, 이산묘 등의 문화재가 있다.

마이산은 계절에 따라 그 모습이 달리보여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이라고 불리우며 사계절 아름답다.

봄이면 마이산 남부의 이산묘와 탑사를 잇는 1.5km의 길에 벚꽃이 만발하고 마이산 벛꽂축제가 열린다.

오가는 길에 전주-군산 47㎞ 도로변이 벚꽃 터널을 이룬다. 가을이면 억새가 물결을 이루고,

가을이면 단풍이 붉게 물든다.

말의 귀와 흡사하게 두 개의 암봉이 우뚝 솟은 마이산은 벚꽃산행지와 탑사 나들이로

마이산 남부의 이산묘와 탑사를 잇는 1.5km의 길에 벚꽃이 만발하는 4월에 가장 많이 찾으며

가을산행, 여름산행 순으로 인기있다

 마이산 등산코스

 

◐ 북부주차장→천황문(화엄굴)→은수사→탑사→탑영제→금당사→남부주차장 (2.7km, 약 1시간 30분)
◐ 북부주차장→천황문→은수사→탑사→천황문→북부주차장 (2.4km, 약 1시간 30분)


◐ 남부주차장→고금당→전망대(비룡대)→성황당→봉두봉→탑사→은수사→천황문→북부주차장

(4.7km, 약 3시간 30분)
◐ 남부주차장→고금당→전망대(비룡대)→성황당→봉두봉→탑사→남부주차장 (5.0km, 약 4시간)
◐ 남부주차장→고금당→전망대(비룡대)→성황당→북부주차장 (3.1km, 약 1시간 50분)


◐ 마령(원강정)→보흥사→광대봉→고금당→남부주차장→(5.0km, 약 3시간30분)→

고금당(산불방지 기간중 폐쇄)→전망대→봉두봉→탑사 (7.3km)
◐ 합미성→광대봉→고금당(산불방지 기간중 폐쇄)→전망대→봉두봉→탑사→남부주차장

(9.9km, 약 6시간 30분)
◐ 덕천교→태자굴→광대봉→(3.1km)→고금당(산불방지 기간중 폐쇄)→전망대→봉두봉→탑사→

남부주차장
◐ 강정대(합미산성)→(1시간 20분)→광대봉→(1시간 20분)→고금당→(20분)→비룡대→(40분)→

봉두봉→(1시간)→암마이봉→(30분)→탑사→(30분)→남부주차장 (약 5시간 30분)

  

 

 

 

 

(나옹암)

 

마이산 주능선상 비룡대 서쪽 500m 거리에 위치한 고금당과 나옹암은

고려말 고승 나옹선사의 수도하던 자연암굴(나옹암)이다.

원래는 금당사가 자리하고 있던 곳인지라 고금당(古金塘)이라고도 하며...

나옹선사(1320-1376)는 고려 불교 중흥에 많은 功을 세운 古僧으로 

고려 공민왕의 왕사(1371)가 되었으며, '보우'와 '무학'의 스승이기도 하다.

 

 

많은 시와 가

법당 바로 아래에 있는 나옹암인데..

천연동굴인 곳을 후대에 앞 부분만 건축을 한 것이라고 한다.

나옹암은 나옹선사께서 이 동굴에서 수도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하신 나옹선사가 이곳 마이산에서 수도를 하셨다고 하니

800년전의 일을 확인할 길이야 없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지 않을까... 사("토굴가")를 남기고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한 古僧이다.

 

 

 

 

 

 

 

 

 

 

 

 

 

 

 

 

 

 

 

 

 

 

 

 

 

 

 

 

 

 

 

 

 

 

 

탑사소개
수박크기의 돌덩이에서 부터 엄지손가락만한 작은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돌에 돌을 포개얹어 크고 작은 외줄 돌탑을 80여개  쌓아 만든 석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 마이산 탑사(馬耳山塔寺).

높이 15m, 둘레 20여m의 거대한 돌탑도 즐비하다.접착제를 쓴것도 아니고,시멘트로 이어 굳힌 것도 아니며, 더더구나 홈을파서 서로 끼워 맞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1백여년의 풍상속에 태풍과 회오리 바람에도 끄덕 없이 견고하게버티고 서있는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보기드문 불가사의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 신비로운 얘기는 1백여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 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본명 경의, 호 석정)는 1860년 3월 25일 임실군 둔남면  둔덕리에서 태어난 효령대군 16대 손이다. 수행을 위해 25세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수도 하던중 신의 계시를 받는다. "억조창생 구제와 만민의  죄를 속죄 하는 석탑을 쌓으라"는 것이었다.


이처사는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시대적으로 뒤숭숭했던 어두운 세속을 한탄하며 백성을 구하겠다는 구국일념으로 기도로써 밤을 보내고 낮에는 탑을 쌓기 시작했다.
 
이처사는 탑을 쌓기 위해 30여년을 인근 30리 안팎에서 돌을 날라 기단부분을 쌓았고,상단부분에쓰인 돌은 각처의 명산에서 축지법을 사용하여 날라왔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모아온 돌로 팔진도법과 음양이치법에 따라 축조를 하고 상단부분은 기공법(氣功琺)을 이용하여 쌓았다

 

 

 

 

 

 

 

 

 

 

 

 

 

 

 

 

 

 

 

 

 

 

 

 

 

 

 

 

 

 

 

 

 

 

 

 

진안군 마이산에 위치한 은수사는 조선 초기에는 상원사(上院寺)라 했고, 숙종 무렵에는 상원사는 없어지고 절 터만 남아 있었는데 그 뒤 누군가 암자를 지어 정명암(正明奄)이라 했다.

해석에 따르면 "正"은 5획으로 오행, "明"은 일월이므로 정명암이란 이름은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아무튼 정명암도 퇴락하여 없어졌다가 1920년에 이주부라는 분에 의해 증창되었고, 이때 은수사로 개칭되었다.현재는 태극전이라 불리는 전각으로 되었지만 ‘정명암’이란 이름을 음양오행의 순환을 나타낸 것으로 보면 태극은 그 상징이 되어 있다.

한편 은수사에는 국내 최대크기였던 법고(1982년 제작)가 소장되어 있고 조선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 삼신할머니상이 상원사지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은수사 경내에는 천연기념물이 두가지 있다. 하나는 마이산 줄사철군락이고(천연기념물 380호), 또 하나는 은수사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386호)이다.

춘향전에 보면 이도령이 춘향이 집을 찾아가 첫날밤을 치르기 전, 월매가 내온 주안상에 여러 과일이 올라와 있는데, 이 중 ‘청슬이’ ‘청술레’라고 한 과일이 바로 청실배(靑實梨)라 한다. 돌배나무들 중에서 특히 맛좋은 열매가 달린 나무가 청실배나무로 개량배에 밀려 있다. 은수사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으로 역(逆) 고드름은 마이산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은수사 쪽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한글학회의 『지명총람』에 의하면 은수사란 이름은,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물이 은같이 맑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해진다.

 

 

 

은수사는 본시 불당 겸 요사채로 쓰인 건물과 그 위 산신도각(山紳度閣)이 있었을 뿐이었으나 근래 극락전, 태극전, 대웅전과 요사채를 건립하여 바야흐로 대가람으로 도약을 기약하고 있다. 한국 내 최대 크기였던 법고(1982년 제작)가 소장되어 있으며,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상, 삼신할머니상이 상원사지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사찰과 관련되어 전해지는 이야기는 대부분 태조 이성계와 관련지어져 있는데 은수사 경내에 천연기념물인 마이산 줄사철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380호)과 청실배나무(천연기념물 제386호)가 있는데 청실배나무는 청실배나무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건국의 기원을 다지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린 뒤 손수 심은 씨앗이 싹을 틔운 나무라고 한다

 

 

 

 

 

 

 

 

 

 

 

 

 

 

 

 

 

 

 

 

 

 

 

 

 

 

 

 

 

 

 

 

 

 

 

 

 

 

 

 

 


진안읍 마이산에는 금당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금당사는 814년(신라경덕왕 13년)에 혜강대사가 지은
 절이다. 이 절에는 목불 셋과 괘불이 있다.

옛날 이곳에서 수도하던 수도승의 생활은 신선과 같았고 부처님의 높은 도를 깨우친 분이었다고한다.
어느해 늦은 봄이었다. 매우 가뭄이 심하여 사람들은 금당사에서 수도하는 스님에게 찾아가 애원
 하였다. 스님은 정색을 하며 기우제를 드리자고 하고 밤이되자 스님은 호랑이 등을 타고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기우제 준비를 마치고 사흘을 기다리니 스님이 절의 뒷마당에 사람을
 그리고 그 곳을 백자만 파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모두들 주저하였으나 스님의 말대로 파기 시작했고
 드디어 백자가되는 땅속에서 부처님이 그려진 한 폭의 괘불이 나왔다. 이 괘불을 절에 걸고 기우제를
 올리자 기다리던 비가 오기 시작하엿다.

지금도 가뭄이 심할때면 금당사에서 괘불을 걸어놓고 기우제를 지내면 틀림없이 비가 온다고 한다.

어느 날 스님의 제자 여럿이 스님의 도술을 시험해 보기로 하고 달걀을 개어 떡을 구워놓고 스님에게
 살아있는 병아리를 만들어 보이라고 하였다. 스님은 경을 외며 조용히 꿇어 앉아 살아 있는 병아리로
 만들어 보이었다. 상좌들과 마을사람들은 스님의 도술에 크게 탄복하여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이
 스님이 바로 공민왕때의 고승 나옹스님이다.

금당에서 북쪽으로 500m거리에는 나옹대사가 크게 대각을 얻었다는 고금당이 있다. 도 이곳에서는
 동학 혁명의 주체인 녹두 전봉준장군의 딸이 10년간 피난했다는 일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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