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치 :경남 통영시 산양읍 일원
☞여행일자 : 2016년4월9일
☞카 메 라 ; 캐논 EOS 5D Mark III
☞날 씨 : 맑음
☞여 행 지 : 통영 미래사.박경리 문학관
☞여행시간 : 시간 분
☞여행거리 : .km
☞참가인원 :
☞여행코스 :
☞이동수단 ;
☞숙 박 ;
☞백대명산 ;
☞특이사항 ;
도로명 경남 통영시 산양읍 미륵산길 192지번
지번 통영시 산양읍 영운리 915
미래사 소개
미륵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미래사는 효봉(曉峰)스님의 상좌였던 구산(九山)스님이 석두(石頭), 효봉 두 큰스님의 안거(安居)를 위해 1954년에 세운 암자였다. 종각은 우리나라에서 보기드문 십자팔작누각(十字八作樓閣)이며, 삼층 석탑에는 티베트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 3과가 봉안되어 있다. 미래사는 미륵산 남쪽의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이 절은 효봉 큰스님의 상수 제자(上首弟子)인 구산수련대선사(九山秀蓮大禪師)가 6·25 전란 직후인 1954년도에 창건하였으며 주로 효봉 큰스님의 문도들이 주지를 하면서 차츰 키워온 선도량(禪道場)이다. 이 절 주지를 역임한 스님으로는 구산 큰스님, 미산 큰스님, 보성(菩成) 큰스님, 법흥스님, 종욱 스님과 현재의 여진 스님 등이다. 미래사 주위의 편백나무 숲은 전국 사찰 임야로써는 유일한 것으로서 70여 년 전 일본인이 심어 가꾸다가 해방이 되어 돌아가자 미래사에서 매입하여 오늘날의 큰 숲으로 가꾸어 온 것이다.
종욱 스님은 낡은 대웅전을 헐고, 30평 규모의 웅장한 대웅전을 1985년에 새로 건축하였고 이어 조사전(祖師殿, 1987), 삼층석탑(1988), 요사 2채와 삼회문(三會門, 1989), 범종각(梵鐘閣, 1994) 등을 새로 지음과 동시에 도량을 정리하여 구산 스님이 창건한 당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새롭게 중창하였다. 또 차밭(茶園)을 마련하여 수만 그루의 차나무를 심어 옛날 우리 나라에서 성했던 차도(茶道) 보급에 앞장서고 있으며, 1986년에는 통영시 당동에 불교회관 여여원(如如院)을 신축하여, 주로 청소년과 어린이 등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포교하는 전당으로 삼아, 통영의 불교 발전에 기여하다가 1996년 입적하였다. 산내에는 효봉 큰스님이 만년에 계셨던 효봉암과 동암(東庵)이 있어 본분납자(本分納子)가 상주하고 있으며, 효봉 큰스님의 스승이신 석두(石頭) 화상과 효봉 큰스님의 부도와 비가 있고, 효봉암 뒤에 석조미륵불상을 조성하여 신도들과 이 지역을 찾는 분의 참배처가 되고 있다.
•위 치 :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 1429-9번지
•박경리선생의 고향 통영을 배경으로 한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통하여 한 가족의 몰락 과정을 다루며, 작가의 작품 세계에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었으며,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여 4대에 걸친 인물들을 통해 민중의 삶과 한(恨)을 새로이 부각시킴으로써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 박경리를 기념하고,
•박경리선생의 고향으로 선생문학에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한 고향 통영을 소개함으로써 선생의 문학세계 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건립함.
박경리 선생 묘소
젊었을 때 고향을 떠난 이후 48년만인 말년에
고향 통영을 찾은 선생은 미륵산 아래 양지농원에 묵으며
책을 읽고 지내다가 먼 바다를 내려다보곤, 죽으면 이곳에 묻히고 싶다 했다 한다
그리고 얼마 뒤 선생이 세상을 떠나시자 이 말은 유언이 되었고,
양지농원 주인은 선생의 유택을 위해 선뜻 1000평의 땅을 내놓았다 한다.
박경리 선생의 평소 유언대로 묘지는 작고, 비석 하나 세우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다.
'여행 사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곡지 (官谷池) (0) | 2016.07.06 |
---|---|
도당공원 백만송이 장미원 (0) | 2016.06.20 |
(예천군)용문사.초간정.석송령 (0) | 2016.03.11 |
(예산군)추사(秋史)고택과 김정희(金正喜) (0) | 2016.03.05 |
(인천시)도호부 청사.대보름맞이 민속문화축제 (0) | 2016.02.24 |